캘리포니아는 종료 예정이던 제도를 무기한 연장, 템피는 시의회 만장일치로 ‘최소 10개 비치’ 시행
미국 여러 주로 확산되는 스파이킹 예방 입법… 이제 한국도 ‘개인의 주의’가 아닌 ‘공간의 책임’을 논의해야 한다

술자리에서 자신의 음료를 잘 지켜야 한다. 낯선 사람이 건넨 음료를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 자리를 비웠던 음료는 다시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는 오랫동안 스파이킹 범죄를 이렇게 설명해 왔다.
물론 필요한 예방수칙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범죄를 막기 위한 책임이 지나치게 피해 가능성이 있는 개인에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는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왜 고객만 자신의 음료를 지켜야 하는가.
사람들에게 술과 음료를 판매하는 공간 역시 예방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갖춰야 하지 않는가.
이 질문이 이제 캠페인을 넘어 법과 조례가 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한시적 제도를 사실상 상시 제도로 바꾸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미국 캘리포니아주다.
캘리포니아에서는 2024년 7월부터 일정한 Type 48 주류면허를 가진 바와 나이트클럽 등에 음료 속 약물을 확인할 수 있는 스파이킹 검사장치를 고객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시행돼 왔다.
검사장치에는 테스트 스트립뿐 아니라 스티커, 빨대 등 음료 속 특정 약물을 탐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장치가 포함된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가 처음에는 영구적인 제도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관련 규정은 당초 2027년 1월 1일 종료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26년 캘리포니아 의회가 선택한 방향은 폐지가 아니라 연장, 그것도 단순한 몇 년 연장이 아니었다.
AB 1982는 기존 법의 종료조항, 이른바 ‘sunset clause’를 삭제했다. 이에 따라 스파이킹 테스트 장치와 음료 뚜껑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는 종료 시한 없이 계속 유지될 수 있게 됐다. 2026년 9월 20일 Gavin Newsom 주지사의 서명으로 법률이 확정됐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표결 결과다.
캘리포니아 상원에서는 39대 0, 하원의 최종 동의 표결에서는 74대 0이었다.
사실상 반대 없이 통과된 것이다.
스파이킹 예방을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안전의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한시적으로 시험했던 예방정책을 없애기는커녕 오히려 종료기한을 없앤 것은 더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스파이킹 검사장치는 이제 일시적인 캠페인 물품이 아니라 업장이 갖춰야 할 안전 인프라의 하나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템피는 한 걸음 더 나갔다… “최소 10개를 갖춰라”
캘리포니아가 제도의 지속성을 보여줬다면 애리조나주 템피시는 그 기준을 훨씬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템피 시의회는 2026년 2월 스파이킹 예방 조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몇 달간의 논의와 주민·업계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됐고, 2026년 8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템피시는 이를 애리조나에서 처음 도입된 음료 스파이킹 예방 조례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템피의 제도가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단순히 “테스터를 비치하라”는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상 업장은 매 영업일을 시작할 때 유효기간이 지나지 않은 실험실 인증(lab-certified) 스파이킹 검사키트를 최소 10개 이상 보유해야 한다.
재고가 10개 아래로 떨어지면 3영업일 이내에 다시 보충해야 한다.
무료로 제공할 수도 있고 판매할 수도 있지만 판매가격에도 제한을 두었다. 템피시 공식 시행 지침에 따르면 고객에게 판매할 경우 업장의 구매비용 대비 150%를 넘길 수 없다.
여기에 모든 화장실에 고객이 볼 수 있도록 스파이킹 위험과 검사키트 이용을 알리는 안내물을 게시하도록 했다.
즉 템피의 제도는 단순한 권고가 아니다.
수량, 유효기간, 인증 기준, 재고관리, 판매가격, 안내표지까지 관리하는 제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스파이킹 예방정책의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테스터가 있으면 좋다”는 수준에서,
“안전을 책임지는 업장이라면 일정 수준의 예방수단을 항상 이용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스파이킹 입법은 미국 다른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캘리포니아와 템피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현재 미국 여러 주 의회에서 유사한 입법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각 주마다 법안 진행 단계가 다르기 때문에 이미 모두 시행되고 있는 것처럼 해석해서는 안 된다.
뉴욕주에서는 2025~2026 회기 S9146과 A8613A가 논의되고 있다.
해당 법안은 일정한 주류면허 업소가 고객의 요청이 있을 때 음료 약물 검사장치를 제공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특히 현재 법안에는 이를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하도록 하고, 검사장치의 성능과 유효기간 관리까지 규정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일리노이주 HB1738도 바 등이 고객에게 약물 검사장치를 판매하거나 무료로 제공하고, 유효기간이 지난 장치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법률 시행 단계가 아니라 의회에 계류된 상태다.
워싱턴주에서도 SB5330을 통해 특정 주류업소가 고객에게 스파이킹 검사장치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 역시 아직 시행법은 아니지만 법안에는 테스터 제공뿐 아니라 안내문 게시와 유효기간 관리가 포함돼 있다.
매사추세츠주에서는 보다 넓은 범위의 스파이킹 대응법인 S.1537이 논의되고 있다. 피해자 검사와 의료 대응, 공공 캠페인, 스파이킹 대응 태스크포스, 업장 예방조치 등이 하나의 체계로 논의되고 있으며 2026년 3월 위원회의 통과 권고를 거쳐 상원 Ways and Means Committee로 회부됐다.
모든 법안이 최종 통과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체 흐름은 분명하다.
음료 스파이킹을 개인이 조심해야 할 사건에서 업장과 지역사회가 함께 예방해야 할 공공안전 문제로 바라보는 입법이 확산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테스터 한 장’이 아니다
여기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스파이킹 검사키트를 비치한다고 해서 모든 범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물질을 검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제품에 따라 검출 가능한 물질과 정확도가 다르다. 검사 결과가 음성이라고 해서 스파이킹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따라서 테스터를 범죄를 입증하는 최종 증거 또는 의료검사를 대신하는 장치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검사키트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피해가 의심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가장 먼저 사용할 수 있는 예방·확인수단 하나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효과가 있다.
업장에 검사키트가 비치돼 있고, 화장실과 출입구에 “이곳에서는 스파이킹 검사가 가능하다”는 안내가 붙어 있다면 잠재적인 가해자에게도 명확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이 공간은 스파이킹을 방치하지 않는 공간이라는 메시지다.
그래서 테스터 비치는 교육, 안내표지, 종사자 대응교육, CCTV와 증거보존, 신고체계, 피해자 보호, 의료기관 연계와 함께 설계돼야 한다.
테스터 한 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테스터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예방 시스템이 중요하다.
이제 한국도 ‘안전업장 기준’을 논의해야 한다
우리도 이제 같은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클럽이나 바뿐만 아니다.
대학가 주점, 대학축제, 공연장, 페스티벌, 지역축제, 호텔, 대형행사처럼 불특정 다수가 음료와 술을 소비하는 공간에는 어떤 스파이킹 예방 기준이 있어야 하는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전국 모든 업장에 동일한 강제규정을 적용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선 자율적인 ‘스파이킹 안전업장’ 인증제도를 시작할 수도 있다.
일정 수량 이상의 검사키트 비치, 유효기간 점검, 이용 안내표지, 음료 보호커버, 종사자 예방교육, 피해 의심 시 보호절차, CCTV 보존, 112·119 및 의료기관 연계 같은 기준을 충족한 업장을 시민에게 알려주는 방식이다.
축제와 행사에는 규모에 따라 적정 수량을 정할 수 있다.
대학에는 축제뿐 아니라 신입생 행사·동아리 행사·학생회 행사에서 활용할 수 있는 별도의 예방지침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에서 실제 운영자료와 데이터를 축적한 뒤 효과가 확인된다면 지자체 조례나 관련 법령을 통해 단계적인 제도화를 논의할 수 있다.
해외 제도를 그대로 복사할 필요는 없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업종과 면허를 기준으로 규제하고, 템피에서는 심야 주류판매 업장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수량과 관리기준을 만들었다.
한국 역시 우리의 업장 구조와 축제문화, 대학문화에 맞는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예방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
리본라인은 현재 **‘스파이킹 범죄 예방교육센터 설립준비위원회(Spiking Prevention & Education Center · Establishment Committee)’**를 통해 국내 현실에 맞는 예방교육과 현장 대응체계를 준비하고 있다.
센터가 지향해야 할 역할도 단순히 “음료를 조심하라”고 교육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업장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행사는 어떤 안전계획을 세워야 하는지, 학교와 대학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의심사례가 발생했을 때 종사자는 어떻게 피해자를 보호하고 증거와 기록을 남겨야 하는지까지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향후 설립준비위원회에서도 해외 입법사례와 국내 현장환경을 검토해 스파이킹 예방교육, 안전업장 기준, 검사키트 운영기준, 학교·대학·행사 가이드라인을 연결한 정책모델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
캘리포니아가 제도의 종료기한을 없앴다는 사실과 템피 시의회가 만장일치로 최소 10개의 검사키트 비치를 결정했다는 사실을 단순한 해외뉴스로만 봐서는 안 된다.
두 사례가 공통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명확하다.
스파이킹 예방은 더 이상 피해 가능성이 있는 개인에게만 요구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화재 위험이 있는 공간에 소화기를 준비하고, 응급상황에 대비해 AED를 설치하듯이 사람이 모이고 음료가 소비되는 공간에는 그 공간에 맞는 예방수단이 필요하다.
모든 범죄를 사전에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위험을 알고도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는 사회와, 작더라도 예방장치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사회의 결과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스파이킹 테스터가 정말 필요한가”가 아니다.
“사람들이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그 질문에서 한국의 스파이킹 예방정책도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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