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최소한을 지키는 제도는 필요하다…그러나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소상공인의 ‘최소한’은 누가 지키는가
2027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1만700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올해보다 380원, 3.7% 오른 금액이다. 주 40시간, 월 209시간 기준으로 환산하면 월 223만6300원이다. 숫자만 놓고 보면 그렇게 큰 폭의 변화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숫자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현실은 결코 같지 않다.
누군가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그나마 삶을 버티게 해 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반면 누군가에게는 이미 빠듯한 가게 운영비 위에 또 하나의 무거운 비용으로 얹힌다.
그래서 묻게 된다.
최저임금은 해마다 당연히 올라야 하는 물가지수인가.

최저임금은 필요하다, 하지만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먼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최저임금 제도는 필요하다.
사람이 하루 종일 일하고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고 인간다운 삶의 기준선을 지키기 위해 최저임금은 반드시 필요한 제도다.
문제는 제도의 필요성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그 비용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감당하고 있는가다.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사회는 대체로 같은 장면을 반복한다. 노동자는 생계비를 말하고, 사업주는 인건비 부담을 말한다. 그리고 논쟁은 매번 “얼마를 올릴 것인가”에 집중된다.
하지만 정작 놓치고 있는 질문이 있다.
그 최저임금을 실제로 지급해야 하는 가장 작은 사업장은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모든 ‘고용주’가 같은 고용주는 아니다
법과 제도 안에서 보면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쪽은 모두 ‘사용자’다.
하지만 현실에서 대기업 사용자와 골목의 작은 식당 사장은 같은 위치에 서 있지 않다.
프랜차이즈 본사와 직원 한두 명을 두고 일하는 동네 미용실 원장은 같은 조건이 아니다.
수백억 매출 기업과 가족이 함께 가게를 지키며 겨우 버티는 자영업자는 같은 방식으로 묶어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논의는 종종 이 차이를 지워버린다.
‘사용자 대 노동자’라는 단순한 구도 안에서는, 영세 소상공인이 처한 현실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현장으로 들어가 보면 사정은 훨씬 복잡하다.
매출은 줄고, 임대료는 그대로이며, 재료비는 올랐고, 카드수수료와 각종 공과금도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건비까지 계속 오르면 상당수 소상공인에게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
직원을 줄이거나, 신규 채용을 미루거나,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결국 사장과 가족이 직접 더 오래 일하는 식으로 버티게 된다.

직원보다 적게 가져가는 사장도 있다
요즘 자영업 현장에서 어렵지 않게 들리는 말이 있다.
“직원 월급 주고 나면 내 몫이 없다.”
과장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영세 사업장에서는 이 말이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현실인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소상공인 관련 조사와 현장 목소리를 보면, 직원 인건비를 지급하고 나면 정작 사업주 본인의 소득은 그보다 적은 경우가 있다는 호소가 반복된다. 일정 조사에서는 월평균 영업이익이 2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상공인이 적지 않다는 결과도 제시된다. 이런 수치는 조사 주체와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현장의 위기감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은 분명히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장과 직원을 갈라치기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최저임금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저소득 노동자와 저소득 자영업자가 서로를 바라보며 버티는 구조가 됐다. 한쪽은 “이 돈으로는 살 수 없다”고 말하고, 다른 한쪽은 “이 돈을 주면 가게를 유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 모두 틀리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누가 더 힘드냐가 아니다.
왜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를 가장 취약한 두 주체에게만 떠넘기고 있느냐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자동 인상 장치가 아니다
최저임금을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이 막연히 이렇게 생각한다.
“물가가 오르니 최저임금도 오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물론 물가와 생계비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단순히 물가상승률에 맞춰 자동으로 조정되는 숫자가 아니다.
법 취지상 최저임금은 단순한 물가지표가 아니라, 근로자의 생계와 임금 수준, 노동생산성, 소득분배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정하는 사회적 기준선이다.
즉, 최저임금은 “시간이 지났으니 또 올리는 숫자”가 아니라,
누구를 보호하고, 누가 감당하며, 사회 전체가 어떤 방식으로 비용을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 판단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논의는 너무 자주 “올릴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이분법에 머무른다.
그 결과, 최저임금의 본래 목적과 현실적 부담 사이를 조정해야 할 정치와 정책은 뒤로 빠지고, 노동자와 영세사업자만 마주 앉게 된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과 소상공인을 보호하는 것은 반대말이 아니다
최저임금 논쟁이 시작되면 사회는 쉽게 양쪽으로 갈린다.
노동자를 보호하려면 최저임금을 올려야 하고,
소상공인을 보호하려면 인상을 억제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구도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노동자의 최소한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동시에 그 임금을 지급하는 가장 취약한 사업장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둘은 반대말이 아니다.
오히려 둘 다 함께 지켜야 최저임금 제도도 지속가능해진다.
사업장이 줄어들면 일자리가 줄어든다.
반대로 노동자가 생활할 수 없는 수준의 임금만 지급하는 구조 역시 오래 유지될 수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찬반의 대립이 아니라 비용 분담 구조의 재설계다.

국가의 역할은 ‘결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최저임금을 정하는 것은 국가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그 숫자가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또한 국가의 역할이어야 한다.
만약 사회가 2027년 최저임금 1만700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면, 그 비용을 가장 약한 사업주에게 사실상 전가하는 구조가 과연 정당한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
예를 들어 이런 논의가 필요하다.
- 영세 사업장의 사회보험료 부담 완화
- 저임금 근로자의 실질소득을 보완할 세제 지원
- 고용유지 사업장에 대한 정교한 지원 확대
- 카드수수료, 플랫폼 수수료, 임대료, 에너지 비용 등 소상공인 고정비 부담 완화
- 업종별 지불능력과 생산성 차이를 반영할 보완장치 검토
최저임금의 사회적 필요성을 인정한다면,
이제는 “얼마를 올릴 것인가”만이 아니라 “그 비용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
직원의 최소한은 법이 지킨다, 그렇다면 사장의 최소한은 누가 지키는가
근로자의 최소한은 법이 지킨다.
그래서 최저임금은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에는 직원보다 오래 일하고도 직원보다 적게 가져가는 영세 소상공인도 있다. 아침 일찍 문을 열고 밤늦게 문을 닫으며, 직원 월급을 먼저 챙기고 나서야 자신의 몫을 계산하는 사람들이다.
사업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모두 ‘여유 있는 고용주’로 보는 시선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고 싶다.
직원의 최저임금은 법이 지켜준다.
그렇다면 직원보다 오래 일하고도 직원보다 적게 가져가는 소상공인의 삶은 누가 지켜주는가.
이 질문은 최저임금을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노동자에게 양보를 요구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오히려 최저임금이라는 필요한 제도를 지키기 위해,
그 제도를 감당해야 하는 가장 약한 사용자까지 함께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제는 숫자보다 구조를 이야기할 때다
2027년 최저임금은 1만700원으로 결정됐다.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우리는 또다시 최저임금 숫자를 놓고 논쟁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때는 질문이 조금 달라졌으면 한다.
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은 얼마인가.
그리고 동시에,
그 최소한을 지급하는 가장 작은 사업장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은 무엇인가.
한쪽의 생존을 다른 한쪽의 희생 위에 세우는 제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최저임금 논의가 정말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노동자의 삶과 소상공인의 삶을 함께 지키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최저임금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는 기준선이 되는 길이라고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