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모텔 약물 사건’에 가려진 범죄 방식…상대 몰래 약물을 먹이는 순간 이미 범죄는 시작된다
약물을 탄 음료를 남성들에게 마시게 해 2명을 숨지게 하고 4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소영 사건의 구체적인 범행 정황이 공개되면서, 사건에 사용된 ‘약물 투여’ 방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공개된 김소영의 1심 판결문 분석 내용에 따르면 법원은 김소영이 피해자들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은 뒤 관계를 끊거나 자신에게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대리운전기사였던 한 피해자에게는 모텔에서 약물을 먹여 의식을 잃게 했고, 다른 피해자의 휴대전화 잠금을 지문으로 해제해 자신의 계좌로 돈을 송금한 사실도 판결문에 담겼다.
김소영은 범행 과정에서 수면제 과다 복용, 약물과 술의 혼용, 의식불명 지속 시간 등을 인공지능(AI)에 반복적으로 질문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의식불명 시간이 8시간, 16시간, 32시간으로 길어지는 과정을 경험하고도 약물 사용을 이어간 점 등을 토대로 마지막 피해자 2명에 대해서는 사망 위험을 인식한 상태에서 범행했다고 판단했다. 김소영과 검찰은 모두 1심 판결에 항소한 상태다.
이 사건은 ‘강북 모텔 약물 사건’, ‘모텔 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이 목숨을 잃은 만큼 살인 사건으로 다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스파이킹 범죄를 연구하고 예방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면, 살인이라는 결과에 앞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행동이 하나 있다.
상대방이 모르는 사이 음료에 약물을 넣었고, 피해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그것을 마셨다는 사실이다.
이 행위에는 이름이 있다.
스파이킹(Spiking)이다.
김소영 사건, 살인에 앞서 시작된 ‘스파이킹’
‘스파이킹’은 아직 한국 사회에서 낯선 말이다.
쉽게 설명하면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음료나 음식 등에 약물이나 술을 몰래 넣어 먹게 하는 행위다.
영국 내무부는 상대방의 인지나 동의 없이 음료에 술을 추가하는 행위, 처방약이나 불법 약물을 알코올·비알코올 음료에 넣는 행위, 음식에 약물을 넣거나 약물을 주입하는 행위 등을 스파이킹의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약물이 사용됐느냐만이 아니다.
상대방이 그것을 알고 동의했느냐가 핵심이다.
김소영 사건에서도 피해자들은 자신이 어떤 약물을 어느 정도 섭취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약물의 영향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두 명이 사망했기 때문에 사건은 살인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만약 피해자들이 죽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했을까.
몇 시간 동안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났다면.
그날의 기억 일부가 사라졌다면.
금전적 피해만 입었다면.
주변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셨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면.
과연 우리는 그것을 범죄라고 알아볼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이 바로 한국 사회에 ‘스파이킹’이라는 이름이 필요한 이유다.
“술을 많이 마셨나 보다”라는 말 뒤에 사라지는 사건들
누군가 술자리에서 갑자기 몸을 가누지 못한다.
평소와 다르게 말이 흐려진다.
조금 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갑자기 잠들거나 의식을 잃는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는 흔히 먼저 술을 떠올린다.
“많이 마셨나 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실제로 마신 술의 양과 상태가 맞지 않는다면 다른 가능성도 살펴야 한다.
물론 갑작스러운 기억상실이나 의식 저하만으로 스파이킹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술이나 질환,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겉으로 취한 것처럼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한 만취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그날, 나는 취한 게 아니었다』를 쓰면서 내가 가장 오래 고민했던 것도 이 지점이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할 언어가 없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의심한다.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셨던 걸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행동을 한 걸까.’
‘내 실수였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런 질문도 존재해야 한다.
“혹시 누군가 내 동의 없이 무언가를 먹인 것은 아닐까.”
그 질문을 할 수 있어야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스파이킹 피해자는 여성만이 아니다
김소영 사건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 있다.
스파이킹이라고 하면 흔히 클럽이나 술집에서 여성의 음료에 약물을 넣어 성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을 떠올린다.
실제로 그런 형태의 범죄는 존재한다.
하지만 스파이킹을 그것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김소영 사건에서 알려진 피해자들은 남성이었다. 1심 법원은 김소영이 피해자들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거나 자신에게 불편한 상황을 피하는 과정에서 약물을 사용했다고 판단했다.
즉 스파이킹은 성별이나 장소, 하나의 범죄 목적만으로 한정할 수 없다.
성범죄에 이용될 수도 있다.
금품을 빼앗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의 판단 능력이나 저항 능력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이번 사건처럼 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스파이킹을 ‘클럽에서 여성에게 발생하는 범죄’ 정도로만 알고 있다면 그 범위 밖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왜 굳이 ‘스파이킹’이라는 이름이 필요한가
“약물 범죄라고 하면 되지 왜 굳이 외국어인 스파이킹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질문이다.
내가 스파이킹이라는 말을 알리려는 이유는 영어 단어 하나를 우리 사회에 추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범죄를 바라보는 기준을 바꾸기 위해서다.
‘만취’라고 하면 피해자의 상태가 중심이 된다.
‘술자리 사고’라고 하면 술자리에서 벌어진 사고처럼 들린다.
‘약물 사건’이라고 하면 어떤 약물이 사용됐는지가 먼저 보인다.
하지만 스파이킹이라고 인식하면 질문이 달라진다.
“누가 다른 사람의 동의 없이 무엇을 했는가.”
시선이 피해자의 상태에서 타인의 행동으로 이동한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술을 마시기로 했다고 해서 약물 섭취에 동의한 것은 아니다.
데이트에 응했다고 해서 동의한 것도 아니다.
함께 모텔이나 숙박시설에 들어갔다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모르게 신체와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을 먹였다면 그 순간부터 별개의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피해자가 죽어야만 우리가 사건을 발견한다면
김소영 사건에서 내가 가장 무겁게 바라보는 부분은 두 사람이 사망했다는 결과와 함께, 그 이전에 피해자들이 약물로 의식을 잃는 과정이 반복됐다는 사실이다.
1심 재판부는 김소영이 약물 투여 이후 피해자들의 의식불명 시간이 길어지는 과정을 경험하고 AI를 통해 약물의 위험성을 반복적으로 확인한 점을 살폈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야 한다.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 사건을 알 수 있었을까.
피해자가 몇 시간 뒤 깨어났다면.
자신의 기억이 왜 사라졌는지 몰랐다면.
소액의 금전적 피해만 있었다면.
주변에서 단순한 만취로 판단했다면.
그 사건은 신고됐을까.
수사됐을까.
기록으로 남았을까.
이것은 김소영 사건 한 건에만 해당하는 질문이 아니다.
사회가 스파이킹이라는 범죄 유형을 알아야 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예방은 “자기 잔을 잘 지키세요”로 끝나서는 안 된다
스파이킹 예방 캠페인에서는 흔히 “자신의 음료를 잘 지켜라”,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료를 마시지 말라”는 조언을 한다.
필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그것만 강조하면 예방의 책임이 다시 피해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진짜 예방교육이라면 그 다음을 가르쳐야 한다.
친구가 갑자기 이상한 상태를 보인다면 주변 사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장 직원이 의식이 흐려진 손님을 발견하면 누구에게 알리고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
운영 책임자는 신고가 접수됐을 때 현장을 어떻게 보존하고 의료기관이나 경찰과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가.
영국에서는 2024년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접객업 종사자 약 1만 명을 대상으로 스파이킹을 발견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계획이 발표됐다. 이는 교육 시행 자체가 범죄 감소 효과를 입증했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예방 책임을 이용자 개인에게만 맡기지 않고 현장 대응 능력을 함께 높이려 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에서도 이제 예방교육의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친구, 현장 직원, 운영 책임자가 각각 자신의 역할을 반복적으로 연습하고 실제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대응 절차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 후에는 그 절차가 실제 현장에 남아 있는지 다시 확인해야 한다.
스파이킹이라는 단어를 몇 명이 들었는지가 아니라 위험한 순간에 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교육의 성과가 되어야 한다.
이름이 있어야 신고하고 기록할 수 있다
범죄에 이름이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기록이다.
사건마다 ‘만취’, ‘약물 의심’, ‘기억상실’, ‘술자리 사고’, ‘성범죄 의심’처럼 서로 다른 표현으로만 남는다면 유사한 사건의 반복성을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어떤 장소와 상황에서 사건이 발생하는지.
어떤 증상이 반복되는지.
피해자가 어느 단계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는지.
다른 범죄와 어떤 형태로 연결되는지.
공통된 개념과 기록 기준이 있어야 비교할 수 있다.
물론 모든 의심 사례를 스파이킹 범죄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의심 신고와 확인된 사건을 분명히 구분해야 하고, 각각의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사건을 바라볼 언어조차 없다면 피해는 기록 이전 단계에서 사라질 수 있다.
김소영 사건이 남긴 또 하나의 질문
김소영 사건은 두 사람이 숨진 중대한 형사사건이다.
1심 법원의 판단에 대해서는 현재 항소심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재판 과정도 지켜봐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것은 피고인 개인의 범행 동기만이 아니다.
범죄가 어떤 방식으로 시작됐는지도 봐야 한다.
상대방이 알지 못하는 사이 약물을 먹였다.
피해자는 자신이 무엇을 섭취했는지 알지 못했다.
의식과 판단 능력이 떨어졌다.
그 상태가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됐다.
우리가 앞으로 더 민감하게 발견해야 할 범죄의 모습이다.
스파이킹이라는 말이 낯설다면 처음에는 이렇게 이해하면 된다.
‘상대방 몰래 음료나 음식 등에 약물이나 술을 넣어 먹게 하는 행위.’
중요한 것은 외국어를 하나 더 외우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그날 뭔가 이상했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을 흘려듣지 않을 수 있는 언어를 갖는 것이다.
“기억이 끊겼어요.”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갑자기 몸을 움직일 수 없었어요.”
“평소와 전혀 달랐어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곧바로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것 아니냐”고 결론 내리는 사회와,
“혹시 다른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한 번 더 살펴보는 사회는 다르다.
『그날, 나는 취한 게 아니었다』라는 제목도 결국 이 질문에서 출발했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상 상태를 얼마나 쉽게 술과 개인의 부주의로 설명해 왔는가.
그 사람이 무엇을 겪었는지 듣기도 전에 원인을 결정하지는 않았는가.
김소영 사건은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사람의 음료에 몰래 약물을 넣는 행위를 우리는 제대로 된 범죄의 언어로 인식하고 있는가.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서.
친구가 위험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현장이 대응하기 위해서.
수사기관과 사회가 반복되는 사건을 기록하기 위해서.
이 범죄에는 이름이 필요하다.
스파이킹.
그 이름을 아는 것부터 예방은 시작된다.
김민회 | 『그날, 나는 취한 게 아니었다』 저자 · 스파이킹 범죄예방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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