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세계 자원봉사자의 해, 무보수 원칙은 지키되 실비·보험·교육·경력은 보장해야…선의에 희생을 요구하면 공익도 지속될 수 없다
김민회 | 공익미디어 리본라인 대표
“돈을 받으면 자원봉사가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말을 자원봉사의 당연한 원칙처럼 받아들여 왔다. 금전적 이익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공동체를 돕겠다는 자발적인 마음에서 시작하는 것이 자원봉사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서로 다른 두 가지가 뒤섞여 있다. 하나는 노동의 대가로 받는 임금이고, 다른 하나는 봉사에 참여하기 위해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교통비·식비·장비비와 시간의 비용이다.
자원봉사가 무보수 활동이어야 한다는 원칙과 봉사자에게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은 같은 말이 아니다.
모든 비용을 봉사자에게 부담시키면서 이를 선의와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면 자원봉사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이 된다. 특히 취업과 생계를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청년들에게 ‘무료봉사’는 마음만으로 넘기 어려운 현실적인 장벽이다.
이 글은 자원봉사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무보수와 무지원은 구분해야 하며, 청년의 선의가 경제적 여건 때문에 좌절되지 않도록 자원봉사의 조건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세계가 필요한 것은 ‘무료 인력’이 아니라 시민의 참여다
유엔은 2026년을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세계 자원봉사자의 해’로 선포했다. 돌봄과 기후위기, 재난, 사회적 고립, 지역 공동체의 약화처럼 정부와 시장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커지면서 시민의 참여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유엔 총회 결의 A/RES/78/127
유엔자원봉사단이 발표한 ‘2026 세계 자원봉사 현황 보고서’는 전 세계 생산연령인구의 34.5%인 약 21억명이 매월 어떤 형태로든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보고서는 봉사자의 숫자와 활동시간만 계산하지 않는다. 개인에게 어떤 성장을 가져왔는지, 공동체에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경제·사회적으로 어떤 가치가 발생했는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지를 함께 평가하는 ‘글로벌 자원봉사 참여지수(GIVE)’를 제시했다. UNV ‘2026 세계 자원봉사 현황 보고서’
세계가 다시 자원봉사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값싼 노동력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기술과 제도만으로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공동체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가 더 많은 시민의 참여를 필요로 할수록 자원봉사자가 감당해야 하는 개인적 희생은 오히려 줄어들어야 한다.
청년 자원봉사 참여를 막는 ‘보이지 않는 비용’
자원봉사자는 보수를 받지 않는다. 하지만 봉사는 결코 비용이 들지 않는 활동이 아니다.
현장에 가기 위한 교통비와 식비가 필요하다. 활동에 따라 장갑·의류·촬영기기·통신비와 같은 장비 비용도 발생한다. 자녀나 가족을 돌보는 사람에게는 별도의 돌봄 비용이 들 수 있다. 일을 쉬고 봉사에 참여하면 그 시간만큼 소득이 줄어들기도 한다.
재난과 복지 현장에서는 사고 위험과 정신적 부담까지 감수해야 한다.
자원봉사 시간을 기록하는 제도는 있지만, 그 시간을 만들기 위해 봉사자가 포기한 소득과 지출한 비용은 좀처럼 기록되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는 은퇴했거나 안정적인 소득이 있는 사람, 기업이나 기관으로부터 활동시간을 보장받는 사람, 업무와 봉사활동이 연결된 사람이 상대적으로 지속해서 참여하기 쉽다.
은퇴세대의 봉사를 낮게 평가하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의 경험과 헌신은 우리 사회의 소중한 자산이다. 문제는 취업 준비와 불안정한 노동,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는 청년들이 공익활동에 참여하고 싶어도 지속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청년 자원봉사 참여가 부족한 이유를 개인주의나 이타심 부족으로만 설명해서는 안 된다.
UNV가 8개국을 조사한 2026년 연구에서도 자원봉사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시간 부족과 경제적 제약이 확인됐다. 특히 교통비나 활동비 보전이 없는 비공식 자원봉사에서 이러한 부담이 크게 나타났다. UNV·ILO 비공식 자원봉사 연구
봉사 의지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이 부족한 것이다.
봉사자가 자기 돈을 써야만 진정성이 있다고 믿는 순간, 자원봉사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시민 참여가 된다.
자원봉사 실비 보상은 선의의 가격이 아니다
우리 법은 자원봉사를 지역사회와 국가, 인류사회를 위해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제공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2026년 4월 2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자원봉사기본법 전부개정안도 무보수 원칙을 유지하면서 자원봉사자의 보호 체계를 강화하는 방향을 담았다. 무보수성과 봉사자 보호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원칙이라는 의미다. 국가법령정보센터, 자원봉사기본법 전부개정안 주요 내용
국제노동기구(ILO)의 자원봉사 측정 기준 역시 자원봉사를 원칙적으로 무급 활동으로 정의하지만, 봉사 과정에서 지출한 비용의 환급이나 상징적인 수준의 지원까지 노동의 대가로 보지는 않는다. ILO 자원봉사 측정 매뉴얼
유럽연합이 운영하는 ‘유럽연대봉사단’은 18세부터 30세까지의 청년 자원봉사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대신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 보험, 교육을 지원하고 개인 생활을 위한 소액의 용돈도 제공한다.
청년이 경제적 여건 때문에 공익활동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참여 비용을 사회가 분담하는 것이다. 유럽연대봉사단 지원 기준
교통비와 식비를 지원하는 것은 선의를 구매하는 일이 아니다. 보험을 제공하는 것은 봉사의 순수성을 훼손하는 일이 아니다. 교육과 경력 증명을 제공하는 것도 봉사에 가격을 매기는 일이 아니다.
이것은 시민 누구나 경제적 형편과 관계없이 공익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보장하는 일이다.
‘무급 봉사’와 ‘값싼 노동’의 경계도 분명해야 한다
자원봉사 지원을 확대하자는 주장이 기관이나 단체가 필요한 노동을 저렴하게 사용하는 명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회적이고 자율적인 시민 참여는 자원봉사로 운영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교통비·식비·장비비와 보험 등 실제 활동 비용은 보장해야 한다.
일정 기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자원봉사자에게는 실비와 안전뿐 아니라 교육·멘토링·활동 포트폴리오와 같은 성장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반면 상시 돌봄, 반복적인 행정업무, 정해진 출퇴근, 전문적인 책임과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활동은 자원봉사가 아니라 유급 공익활동이나 정식 일자리로 전환해야 한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노동을 요구하면서 최저임금보다 낮은 활동비만 지급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적은 돈을 지급한다고 해서 노동이 봉사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구분의 기준은 분명하다.
봉사에 참여하면서 발생한 비용을 보전하는 것은 지원이지만, 조직이 필요로 하는 지속적인 노동을 제공하고 그 지휘·감독을 받는다면 정당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청년이 지속해서 참여할 수 있는 자원봉사 구조
청년 자원봉사 참여를 확대하려면 캠페인과 홍보보다 먼저 참여 조건을 바꿔야 한다.
첫째, 교통비·식비·장비비·통신비와 같이 활동 과정에서 발생한 실제 비용을 표준화해 보전해야 한다.
둘째, 자원봉사 중 발생할 수 있는 사고와 신체·정신적 피해에 대비해 보험과 안전교육, 사후 지원체계를 갖춰야 한다.
셋째, 봉사를 통해 습득한 기술과 경험이 교육·학점·자격·경력·활동 포트폴리오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공신력 있는 인정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넷째, 일정 기간 이상 반복되거나 전문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활동은 자원봉사자의 헌신에 의존하지 말고 유급 공익일자리로 전환해야 한다.
다섯째, 봉사시간만 집계할 것이 아니라 참여자의 실비 부담, 중도 이탈 이유, 활동 이후의 성장과 지역사회 변화까지 함께 측정해야 한다.
자원봉사자의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시민이 들어와 오래 활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공익이 개인의 희생만을 연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자원봉사의 순수성은 봉사자가 얼마나 많은 손해를 감수했는지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참여했는지, 그 활동이 공동체에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값싼 노동으로 이용되지 않았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다.
봉사에 임금을 줄 필요는 없더라도, 봉사자가 봉사하기 위해 계속 자기 돈을 내게 해서는 안 된다.
작은 공익도 뉴스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그 작은 공익을 만드는 사람의 시간과 비용, 위험과 노력도 사회가 제대로 보아야 한다.
2026년 세계 자원봉사자의 해는 봉사자를 더 많이 모집하는 해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선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와 소득, 직업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자원봉사의 조건을 다시 설계하는 해가 되어야 한다.
무보수의 가치는 지키되, 참여의 비용은 함께 책임지는 것.
그것이 청년을 다시 공익의 현장으로 불러오고, 자원봉사를 일회적인 희생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사회변화의 힘으로 만드는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