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새벽 6시간 동안 장평동 508.8㎜ 폭우…옥포동 아파트에 토사 밀려들어 1명 사망·2명 부상
‘02시10분 전 시민 대피 요청→04시42분 산사태’…취약지역 지정·사전점검·개별 대피 조치 확인해야
경남 거제시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린 지난 17일 새벽, 산사태가 옥포동의 한 아파트를 덮쳐 주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거제시가 산사태와 하천 범람 위험을 알리며 전 시민에게 대피를 요청하는 재난문자를 보낸 지 2시간 32분 뒤 발생한 사고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고 경과를 종합하면 거제시는 오전 2시10분 시민들에게 산사태와 하천 범람 위험이 있다며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달라는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했다.
그러나 오전 4시42분께 옥포동의 한 아파트 뒤편 사면에서 토사가 쏟아졌다. 흙과 돌은 아파트 1층을 뒤덮고 2층 일부까지 밀려든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고로 주민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사고 당일 공개된 지역 강우 관측값에 따르면 장평동에서는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508.8㎜의 비가 내렸다. 시간당 최대 강수량은 116.8㎜에 달했다. 짧은 시간에 배수시설과 사면이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비가 집중된 것이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과 사면 붕괴 과정은 현장 조사와 감식을 통해 규명해야 한다. 다만 이번 사고에서 별도로 확인해야 할 문제는 있다.
거제시는 시민 전체에게 산사태 위험을 알렸지만, 실제 산비탈 아래에 있던 사고 아파트를 사전에 위험시설로 관리하고 있었는가.
02시10분 대피 요청, 04시42분 산사태
사고 당일의 핵심 시간은 다음과 같다.
- 00시∼06시: 장평동 누적 강수량 508.8㎜
- 시간당 최대 강수량: 116.8㎜
- 02시10분: 거제시, 산사태·하천 범람 위험을 알리며 전 시민 대피 요청
- 04시42분: 옥포동 아파트 뒤편 산사태 발생
- 인명피해: 주민 1명 사망·2명 부상
이 시간표만으로 거제시가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거나 대피 조치에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야간에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는 이동 자체가 또 다른 위험이 될 수 있고, 전 시민에게 보낸 재난문자가 곧바로 모든 가구의 강제 대피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재난문자를 보낸 이후 사고가 발생하기까지 2시간 32분이 있었다. 이 시간 동안 위험지역과 취약시설을 대상으로 어떤 조치가 이뤄졌는지는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사고 사면은 ‘산사태취약지역’이었나
18일 오후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자료만으로는 사고 아파트 뒤편 사면이 법정 ‘산사태취약지역’이나 ‘급경사지’로 지정돼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최근 안전점검 시기와 점검 결과, 사고 아파트에 대한 개별 대피 안내 여부도 공개 자료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여기서 산사태위험지도, 산사태취약지역, 급경사지는 구분해야 한다.
산림청의 산사태위험지도는 사면 경사와 토심, 지질, 지형습윤지수 등 9개 인자를 바탕으로 산사태 발생 확률을 5개 등급으로 표시한 예측자료다. 산림청도 제한된 인자를 이용해 제작한 만큼 활용에 한계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지도상 위험등급이 높다고 곧바로 법정 취약지역으로 지정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등급이 낮거나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다고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산림청 산사태위험지도 설명
‘산사태취약지역’은 산사태로 주민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가 우려되는 곳을 별도로 지정해 관리하는 제도다. 현행 산림재난방지법은 지정된 산사태취약지역과 대피소에 대해 연 2회 이상 현지점검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점검에서 위험성이 확인되면 시설 사용 제한이나 보수·보강·제거 등 안전조치를 명령할 수 있다.
‘급경사지’는 별도의 급경사지 재해예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관리된다. 자연사면뿐 아니라 택지나 도로를 만들면서 생긴 인공 비탈면도 관리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사고 사면의 산사태위험지도 등급만 확인해서는 부족하다. 법정 취약지역 또는 급경사지 지정 여부와 관리대장, 실제 점검 기록을 함께 확인해야 한다.
지정돼 있었다면 ‘점검 결과’, 아니었다면 ‘관리 사각지대’ 확인해야
사고 사면이 산사태취약지역이나 급경사지로 지정돼 있었다면 마지막 점검은 언제 실시됐고 당시 위험등급은 무엇이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점검 과정에서 사면 균열이나 토사 유출, 배수로 막힘, 옹벽 변형, 낙석 위험 등이 발견됐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보수·보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있었다면 실제 공사가 완료됐는지, 완료되지 않았다면 어떤 임시 안전조치를 했는지도 밝혀야 한다.
반대로 사고 사면이 어느 관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면, 사람이 거주하는 아파트 바로 뒤의 사면이 왜 위험관리 목록에 들어가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산사태취약지역이 아니더라도 공동주택이나 옹벽, 절토사면 등 다른 제도로 점검·관리됐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위험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답으로 조사가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다.
재난문자 다음에 무엇을 했나
전 시민 재난문자는 광범위한 위험을 신속하게 알리는 수단이다. 하지만 산사태 피해를 줄이려면 산비탈 아래 주택과 저지대, 하천 주변처럼 실제 위험이 큰 장소를 선별해 주민에게 위험을 전달하고 대피를 지원하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사고에서는 오전 2시10분부터 4시42분까지 다음 조치가 있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 사고 아파트 관리사무소 또는 주민에게 전화·방문·방송을 통한 개별 대피 안내가 이뤄졌는가.
- 사고 아파트가 거제시의 산사태 인명피해 우려지역이나 재난 취약시설 목록에 포함돼 있었는가.
- 현장 예찰이나 순찰이 실시됐으며 위험 징후가 보고됐는가.
- 인근 대피소가 개방됐고 이동이 어려운 주민을 위한 지원이 준비됐는가.
- 경찰·소방·행정기관 사이에 위험정보와 대피 대상 명단이 공유됐는가.
재난문자 발송 여부만으로 재난 대응의 적절성을 평가할 수는 없다. 실제 위험시설을 대상으로 한 후속 조치가 있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공개해야 할 네 가지 기록
책임 소재를 미리 정하기보다 행정기록을 통해 대응 과정을 복원하는 것이 먼저다. 거제시와 관계기관은 다음 자료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첫째, 사고 사면의 산사태취약지역·급경사지 지정 여부와 관련 도면·관리대장이다.
둘째, 2025년과 2026년에 실시된 사면·옹벽·배수시설 점검 날짜와 결과, 현장사진, 보수·보강 지시 및 이행 내역이다.
셋째, 사고 이전 주민들이 토사 유출이나 균열, 배수 문제 등을 신고한 기록과 처리 결과다.
넷째, 17일 오전 2시10분부터 4시42분까지 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일지와 현장 예찰, 전화·방문·방송, 대피소 개방 등 주민 대피 조치 기록이다.
이 자료들이 확인돼야 이번 사고가 예측하기 어려운 극한호우로 발생한 것인지, 관리 대상이었지만 위험 신호를 놓친 것인지, 기존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것인지 판단할 수 있다.
지금 단계에서 이번 사고를 ‘예고된 인재’나 ‘행정 실패’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르다. 동시에 기록적인 폭우였다는 이유만으로 위험지역 지정과 점검, 대피 체계에 대한 검증을 생략해서도 안 된다.
이번 사고가 전국의 산비탈 아래 공동주택에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모두에게 대피하라는 재난문자를 보내는 것과, 실제 위험한 집에 사는 사람을 찾아 대피시키는 것은 같은 재난대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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