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 선조들의 헌신 계승하고 한인사회 갈등·세대 단절 넘어설 새로운 공동 목표 필요
1년여 동안 공석이었던 주호놀룰루 대한민국 총영사 자리에 남상민 신임 총영사가 부임했다.
정부는 지난 6월 19일 남 총영사를 특임 공관장으로 임명했으며, 그는 6월 23일 하와이에 부임했다. 이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76주년 추모 행사에 참석하고, 7월 6일에는 마키키 커뮤니티센터의 하와이 한인회관을 방문하는 등 동포사회와의 소통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공관장 공석은 하와이 한인사회에 적지 않은 우려와 아쉬움을 남겼다. 미주 한인 이민 역사의 출발지이자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해외 거점이었던 하와이의 역사적 상징성을 정부가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졌다.
그런 만큼 신임 총영사의 부임은 단순한 공관장 인사를 넘어, 하와이 동포사회와 한국 정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최근 한국 정부도 재외동포 정책에서 공관의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재외공관이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에 머물지 않고, 동포들의 불편을 해소하며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생활 밀착형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는 방향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하와이 한인사회가 다시 논의해야 할 과제가 있다. 지난 2012년 제안됐다가 중단된 ‘한국문화원 하와이 유치’다.

지난 5월 김준 부총영사와 동포 단체장들이 참석한 간담회에서도 한국문화원 유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에는 한인회와 문화회관건립추진위원회 사이의 갈등과 시설·운영 요건 문제 등으로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지만, 현재는 당시와 다른 조건과 가능성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하와이는 한국문화원이 설치될 역사적·문화적 명분이 충분한 지역이다.
외교부의 ‘2025 재외동포현황’에 따르면 하와이에는 6만1,898명의 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규모만 놓고 보면 미국 본토의 대도시 한인사회보다 작을 수 있지만, 하와이가 한국과 맺어온 역사적 관계는 인구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하와이는 1903년 한인 미주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이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던 초기 이민자들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했고, 학교와 교회를 세우며 한인 공동체의 기반을 다졌다.
2003년에는 이민 100주년 기념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했으며, 이후 미주한인재단 하와이 설립, 한국인 미국 무비자 입국 운동, 한인회 정상화, 한인문화회관 건립 운동, 한인 자본 은행 설립과 코리안 페스티벌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하와이 한인사회가 오늘날 미주 한인 이민의 종가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이민이 가장 먼저 시작됐기 때문만이 아니다. 조국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자신의 삶과 재산을 내어놓은 이민 선조들의 헌신이 축적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사적 자부심 뒤에는 아직 치유되지 않은 갈등도 남아 있다.
한인 이민사와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보존하기 위해 시작된 한인문화회관 건립 사업은 오랜 기간 한인회와 문화회관 측의 갈등과 법적 분쟁으로 이어졌다. 동포사회의 분열은 모금과 공동사업을 어렵게 만들었고, 세대 간 신뢰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2003년 국민회 건물을 매입해 한국독립문화원으로 운영하겠다던 한국의 한 사학재단이 2016년 해당 건물을 재매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논란 역시 하와이 동포사회에 깊은 허탈감과 모욕감을 안겼다.
그럼에도 하와이 한인사회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인문화회관 측은 오랜 분쟁과 어려움 속에서도 모금 활동을 이어가 현재 약 500만 달러 상당으로 평가되는 토지 소유권이 포함된 건물을 확보했다. 과거 한국 정부 지원금 환수라는 아픔을 스스로 극복하며 문화회관 건립의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하와이 한인회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무료 백신 단체 접종과 한인 어르신 돌봄 활동을 펼치며 대표단체로서의 신뢰를 회복했다. 호놀룰루시로부터 마키키 커뮤니티센터 운영권을 확보해 한인회관으로 활용하고, 동포들의 교류와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사랑방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이제는 두 단체가 과거의 갈등을 넘어 새로운 공동 목표를 세워야 할 때다.
한국문화원 하와이 유치는 단순히 새로운 건물이나 기관 하나를 만드는 사업이 아니다. 흩어진 동포사회를 다시 연결하고, 초기 이민자부터 새 이민 세대까지 하와이 한인의 역사를 하나의 서사로 통합하는 공동체 재건 사업이 될 수 있다.
특히 남상민 신임 총영사가 인하대학교 출신이라는 점은 하와이 한인사회에 남다른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인하대학교의 ‘인하’는 인천의 ‘인’과 하와이의 ‘하’를 결합한 이름이다.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은 이민 50주년을 기념해 자신들이 설립했던 한인기독학원의 부지를 매각한 대금 15만 달러를 조국의 대학 설립을 위해 기부했다.
어려운 이민 생활 속에서 모은 재산을 대한민국의 교육과 산업 발전을 위해 내놓았고, 그 뜻을 바탕으로 탄생한 인하대학교는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끄는 인재를 배출해 왔다.
그리고 2026년, 그 인하대학교 출신 인사가 하와이 동포사회를 담당하는 대한민국 총영사로 부임했다. 하와이 이민 선조들의 헌신이 한 세기를 지나 다시 하와이로 돌아오는 듯한 상징적 장면이다.
주호놀룰루 총영사관 역시 하와이 동포들의 기여 위에 세워졌다. 1950년 동지회 회원들은 가난한 조국이 해외 공관을 마련할 수 있도록 2만2,000달러 상당의 가옥을 기증했다. 이 기부는 현재 팔리 지역 총영사관 건물 마련의 밑거름이 됐으며, 총영사관은 새로운 청사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
하와이 이민 선조들은 대한민국에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총영사관과 대학을 세우는 데 필요한 기반을 마련하고, 독립과 국가 발전을 위해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내어놓았다.
이제 한국 정부가 그 헌신에 응답할 차례다.
하와이 한인사회가 지난 10여 년간 어렵게 마련한 약 500만 달러 상당의 한인문화회관 부동산을 한국문화원 유치를 위한 공공 자산으로 활용하고, 한국 정부가 운영하는 정식 한국문화원을 하와이에 설치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문화회관 측의 자산 제공과 정부의 제도적·재정적 지원이 결합된다면, 이는 단순한 시설 기증이나 기관 설치를 넘어 하와이 이민 선조들의 헌신에 대한 가장 명예로운 ‘역사적 보상’이 될 수 있다.
한국문화원은 해외에서 한국의 문화와 예술, 역사와 언어를 알리는 정부 산하 문화기관이다. 외교부 장관이 국제문화교류와 국가 문화홍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재외공관 산하에 설치되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운영을 주관한다.
설치 여부는 동포 인구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현지의 문화 수요와 시장성, 한국문화 확산 가능성, 외교적 중요성, 시설과 운영 기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현재 한국문화원은 세계 30개국에서 35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미주 지역에는 미국 워싱턴 D.C.·뉴욕·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7곳이 있다. 그러나 한인 미주 이민의 출발지이자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하와이에는 아직 정식 한국문화원이 없다.
한국문화원 유치는 하와이가 가진 역사적 가치를 현재의 문화 자산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어와 한인 이민사 교육, 독립운동 사료 전시, 한복·국악·K-POP·한식 프로그램, 차세대 정체성 교육, 현지 주민 대상 문화교류 사업을 상설화할 수 있다. 한인회와 문화회관, 총영사관과 현지 대학·박물관·문화기관을 연결하는 협력 거점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한인회와 한인문화회관이 공동 협력 체제를 회복해 와이파후 플랜테이션 빌리지 설 행사, 코리안 페스티벌, 한국의 맛, 김치축제 등 주요 행사를 함께 추진한다면 동포사회의 화합과 세대교체에도 새로운 동력이 마련될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하와이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 전통 한인 업소의 폐업, 이민 감소와 단체 활동 위축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단체조차 차기 지도자를 찾지 못해 존립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때일수록 한인사회 전체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크고 분명한 공동 목표가 필요하다. 한국문화원 유치는 과거의 갈등을 반복하는 사업이 아니라, 갈등을 끝내고 새로운 세대에게 공동체의 미래를 물려주는 사업이 되어야 한다.
신임 총영사의 부임과 함께 하와이 동포사회에도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정부와 총영사관, 한인회와 한인문화회관, 각 동포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한국문화원 유치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시설 제공 방식과 정부 지원 요건, 운영 주체와 프로그램, 동포사회 의견 수렴을 포함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123년 전 사탕수수 농장의 이민 선조들이 조국을 위해 세운 뜻이 오늘날 한국문화원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결실로 이어진다면, 하와이는 과거의 역사를 기념하는 곳을 넘어 대한민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살아 있는 문화외교의 거점이 될 것이다.
인하대학교 출신 신임 총영사의 부임이 하와이 한인사회의 오랜 숙원을 다시 공론화하고, 이민 종가의 자부심과 공동체의 화합을 회복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Jin Ae Tokuoka | 리본라인 하와이 지사장
